*정경(丁經, Claudio Jung)(www.claudiojung.com)
바리톤 성악가. 오페라와 드라마를 융합한 ‘오페라마(Operama)’를 창시했으며, 예술경영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사)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www.operama.org) 소장으로 한세대학교 예술경영학과에 재직 중이다. 저서 ‘오페라마 시각(始覺)’.

▲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정경 소장

예술과 상업의 가장 큰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생산구조’이다. 일반적으로 상업적 생산구조는 최종 소비가 성립하기까지 생산–유통–소비의 세 단계를 거친다. 반면 예술은 제품의 상품화 과정인 유통 단계가 상당 부분 생략된 제작–소비의 2단계 구조를 띤다.

두 분야의 차이는 생산력 측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상품의 제작 체계만 확보하면 무한에 가까운 생산력을 갖출 수 있는 상업과는 달리, 예술 작품의 생산은 소비자의 수요와 더불어 생산 당사자인 예술가의 의사가 매번 반영되어야 한다는 특성을 지닌다. 상업은 ‘소비자의 만족’을 최우선 가치로 삼지만 예술은 작가 본인의 만족과 완벽에 대한 열망을 함께 추구하기 때문이다.

최근 셰프와 비전문가가 함께 출연해 15분 안에 요리를 완성하여 대결을 펼치는 한 TV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나는 예술과 상업적 기질을 겸비한 셰프들의 등장에 주목하고자 한다. 지금은 요리도 하나의 예술이 되는 세상이다. 셰프들은 음식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에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마치 작품과도 같은 요리를 탄생시킨다.

앞서 언급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셰프들은 ‘15분 내 완성’이라는 까다로운 제약 속에서도 매번 완성도 높은 요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이나 제품을 통해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쿡방’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방송국과 시청자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출연진을 비롯해 방송국과 소비자 모두가 윈-윈 하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예술과 상업이 조화롭게 ‘얽혀있는’ 모습이다.

화장지 박스의 겉면에 고흐나 르누아르의 명화를 인쇄하자 매출이 15%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예술과 상업의 결합은 이처럼 긍정적인 흐름을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술상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예술과 상업이 서로를 보완하며 결합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구조는 어떤 형태일까?

그 힌트는 ‘위계 원칙’의 개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계 원칙은 ‘외적 위계 원칙’과 ‘내적 위계 원칙’으로 나뉜다. 전자는 대외적인 유명세를 얻거나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었을 경우를 일컫는 개념이며 후자는 동일한 계층과 업계에 알려지고 인정받는 것을 말한다.

예술상인으로서 나는 서로 얽힐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위계 원칙 사이에 ‘중간 지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홍보와 마케팅이 결핍되어 있는 예술의 생산 구조는 결과적으로 소비를 창출해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며, 때로는 수익을 내는 데 실패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순수 예술과 상업이 얽혀있는 지점, 그 중간 지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예술상인이다. 그들의 활동을 바탕으로 예술은 보다 온전히 순수성을 추구할 수 있고, 시장은 상품으로서의 잠재력을 지닌 예술 작품을 보다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작품을 매대에 진열하고 기다리면 누군가 알아서 찾아와 구매해주길 바라던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오늘날 작품의 가치는 그 자체의 완성도나 예술성뿐만 아니라 작품의 상품화에 투자되는 모든 과정까지도 포괄하여 매겨진다. 이제 예술가들은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가치가 대중에게 전달, 소비, 용융(熔融)되는 모든 과정을 하나의 작품 활동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