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丁經, Claudio Jung)(www.claudiojung.com)
바리톤 성악가. 오페라와 드라마를 융합한 ‘오페라마(Operama)’를 창시했으며, 예술경영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사)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www.operama.org) 소장으로 한세대학교 예술경영학과에 재직 중이다. 저서 ‘오페라마 시각(始覺)’.

▲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정경 소장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의 하이디 그랜트 할버슨, 토리 히긴스 교수는 인간의 목표달성과 동기부여에 대해 연구하면서 세상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성취지향형(promotion focus)’ 인간과 ‘안정지향형(prevention focus)’ 인간이다. 두 유형은 어떠한 자극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데 성취지향형 인간이 도전과 성장에 무게를 둔다면 안정지향형 인간은 평정(平靜)과 안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안정지향형 인간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많은 학생들이 어린 나이부터 단지 ‘안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대기업 사원, 공무원을 장래희망이라고 답한다. 다음 시대를 이끌어 갈 세대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이러한 가치관과 풍조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 사회의 구조적, 정신적 불균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와 같이 시대를 대표할 만한 예술가가 탄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지킬앤하이드, 맘마미아, 노틀담드파리, 레미제라블과 같은 명작들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신성처럼 나타났던 신예 예술가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고 수많은 순수 창작물들이 흥행에 실패를 거듭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내면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이 ‘안정에의 욕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너무 많은 예술인들이 성공을 거둔 기존 작품의 틀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안정’을 이유로 오늘도 끊임없이 고전 작품만을 답습하고 창작물마저 고전의 틀에 끼워 맞춰 안주하려 한다. 고전에 매달려 그 재현과 표현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작업이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완전히 새로운 창작과 도전은 더욱 중요한 가치이다.
 
고전에만 머무르는 것도, 고개를 돌려 현대예술만을 직시하는 것도 우리 예술가들에게는 허용될 수 없는 사치이다. 예술인은 항상 고전으로 돌아가 꾸지람과 호통을 듣고 반성하며 현대를 좌지우지하는 대중의 입맛과 섬세함에 좌절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예술가가 창작의 고통을 회피하고 안주하는 순간, 그가 속한 시대에서의 도태가 시작된다.

안정지향주의는 어느덧 대중의 기호 의식에까지 스며들어 있다. 베스트셀러, 음원 차트의 숫자와 데이터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타인이 좋아하는 것을 자기 자신도 좋아하는 것이라고 믿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과정에는 주체적인 의사 결정과 자신이 진정으로 선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전적으로 누락되어 있다. 천편일률적일 수밖에 없는 판단 기준은 점차 획일화되고 개성이 부족한 사회, 대중, 개인을 만들어내며 이는 작품의 예술성 및 의식 수준의 저하와 국가경쟁력 결여로 이어진다.

이처럼 예술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대한민국은 지금 생존을 우선시하는 안정지향과 요행을 꿈꾸는 양극으로 가득하다. 거창하지만 그 간극을 차츰 메워가는 일이 예술상인으로서의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실패를 두려워 않는 도전정신과 용기 속에서 아름다운 명작들이 무수히 탄생할 수 있기를. 예술 의식의 성장을 위한 사회적 고민이 더욱 깊고 풍부해져 대중의 기호와 개성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비로소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던 자크 라캉의 발언을 부정할 수 있는 주체적이고 온전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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