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丁經, Claudio Jung)(www.claudiojung.com)
바리톤 성악가. 오페라와 드라마를 융합한 ‘오페라마(Operama)’를 창시했으며, 예술경영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사)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www.operama.org) 소장으로 한세대학교 예술경영학과에 재직 중이다. 저서 ‘오페라마 시각(始覺)’.

▲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정경 소장이 전지호 피아니스트(왼쪽)와 슈베르트의 '마왕'을 연습하고 있다.

나는 항상 사람을 찾고 있다. 온전히 예술에 모든 것을 바치는 예술가, 예술 작품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발전할 수 있도록 채찍질하는 비평가, 예술이라는 산업을 뒷받침하는 후원자, 그리고 예술의 소비주체이자 향유자인 관객들. 그들 가운데 예술상인으로서 찾고 있는 이상향의 퍼즐 조각들이 모두 존재할 것이라 믿는 까닭이다.

2010년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독창회 당시 나는 슈베르트의 가곡인 ‘마왕’을 연주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는 특히나 마왕을 연주하는 실력이 빼어났다. 이 곡은 슈베르트가 괴테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한 곡으로 폭풍우를 뚫고 달리는 마차의 말발굽 소리 표현이 인상적이며,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곡으로도 유명하다.

슈베르트 당시에 사용되던 피아노들은 요즘 널리 이용되는 피아노에 비해 건반의 반발력이 빠르고 강했다. 마왕에 등장하는 폭풍우와 질주하는 말들의 발굽소리는 그처럼 빠른 템포에 적합한 구조를 가진 피아노를 바탕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풍부한 음색과 기계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갖춘 현대의 피아노들은 대부분 건반의 반발력이 약해 마왕이라는 곡에 담긴 마수(魔手)를 충분히 표현해내기 어려웠다.
 
연주자의 힘과 테크닉, 그리고 피아노의 기술적인 부분이 맞물리지 않으면 곡에 대한 올바른 표현이 불가능한 법이다. 그런 까닭에 독창회 당시의 피아니스트가 출국한 이후 나는 단 한 차례도 슈베르트의 마왕을 연주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소 직원으로부터 슈베르트의 마왕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독창회 당시의 연주 영상을 보여주며 이러한 템포, 이러한 박자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음에도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일단 호흡을 한 차례 맞추어 본 다음 마왕을 무대에 올릴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연습을 마친 나는 탄성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새로운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독창회 당시 연주된 마왕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그와 같은 표현력과 기술을 어떻게 갖출 수 있었는지를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우선 슈베르트 시대에 사용된 피아노와 가장 비슷한 건반 무게와 반발력을 갖춘 피아노 브랜드와 모델을 찾아내었고, 이후 해당 모델을 갖춘 연습실만을 골라 몇 달간 슈베르트의 ‘마왕’만을 갈고닦았다고 밝혔다. 이미 피아니스트로서 최고의 학력과 실력을 갖춘 프로 연주자였음에도, 생업을 비롯한 다른 일정들이 있었음에도 오로지 보다 나은 예술을 탄생시키고자 노력과 열정을 바친 것이었다.

함께 마왕을 연주한 무대를 마치고 환하게 웃으며 관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 순간이 바로 예술상인으로서 찾아내어야 할 보물이고, 가야 할 길’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관객들의 열렬한 박수갈채와 환호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아 보였던 그 피아니스트는 나와 함께 이미 다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극장장은 이 청년 예술가를 후원하고 싶다며 당장 내년부터 일주일간의 대관을 협찬하고 나섰다. 예술을 향한 예술가의 순수한 도전과 헌신은 관객과 비평가를 감동시켰고, 다른 예술가와의 새로운 무대로 이어져 후원자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예술상인으로서 이 이상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순수하고 올곧은 예술혼을, 나는 앞으로도 끝없이 찾아 헤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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