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마 콘텐츠로 풀어보는 오페라 이야기

▲ 바리톤 정경이 뉴욕 카네기홀에서 로니시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피가로의 아리아를 부르고 있다.

(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이전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피가로의 결혼'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연극 형태로 무대에 올랐다.

원작자인 보마르셰는 본래 이 작품을 연극이 아닌 오페라 부파로 제작하려 하였으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 넣은 기획 제안이 거절당하면서 결국 모양새를 바꾸어 연극 형태로 제작 방향을 바꾸었다.

연극 '세비야의 이발사'는 이듬해 프랑스의 국립극장인 코미디 프랑세즈의 공식 상연 작품으로 채택되었으나 실제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2년도 넘게 지체되었다.

1775년 2월 23일, 천신만고 끝에 개시한 공연은 반응이 좋지 않았다. "보마르셰는 이제 끝났다"는 비난에 가까운 평을 받을 정도였지만 보마르셰는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내 목적은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선의만 있다면 관객이 작품에 즐거워하든 나를 비웃든 내 목적은 이룬 것이다."

보마르셰는 원고를 수정하여 5막이었던 연극을 4막으로 줄인 다음 다시 무대에 올렸는데, 이 수정 작업이 주효했는지 연극 '세비야의 이발사'는 대성공 가도를 걷기 시작한다.

수십 년이 흐른 뒤, 로시니는 이 작품을 오페라로 재창조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오래전부터 연극 '세비야의 이발사'가 지닌 매력에 주목하고 있었으나 선배 작곡가인 파이시엘로가 이미 동 작품을 오페라로 제작한 터라 손을 대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때마침 당대의 유명 테너였던 마누엘 가르시아가 자신을 위한 새 오페라를 제작해 달라는 제의를 해 오고, 로시니는 한 달여 만에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작곡을 마친다. 그렇게 탄생한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는 1816년 2월 20일 로마에서 초연되었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전반적인 이야기는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의 연애와 결혼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제목이 지칭하는 바대로 세비야의 이발사인 피가로라고 볼 수 있다.

이발사인 피가로의 직업 설정은 극 이야기와 맞물려 독특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데 어느 특정한 장소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직업적 특성상 귀족인 로지나나 바르톨로보다 훨씬 큰 자유를 누린다.

이러한 자유는 피가로에게 '정보'라는 막강한 힘을 제공한다. 비록 중매쟁이로 표현되지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피가로는 극 중 인물들의 속마음을 파악하여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자이기도 했다.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피가로는 신분상으로는 분명 극 중 다른 인물들보다 훨씬 아래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두가 그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갑'의 위치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피가로의 활약상은 당대 민중의 열망이 투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원작 희곡이 발표된 1775년의 프랑스는 사회 변혁에 대한 열망으로 한창 달아오르고 있었다. 지식인과 상공 시민층을 중심으로 민중들이 신분제도의 부조리함과 불합리함을 점차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작품은 신분이나 재화보다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었으며, 관객들, 나아가 민중은 신분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종횡무진하며 귀족사회를 휘젓는 피가로의 꾀와 자유로움에 통쾌함을 느끼고 열광했다.

'세비야의 이발사'에는 피가로 외에도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여주인공 로지나가 등장한다.

'갇혀서 도움을 기다리는 여성'이란 점에서 로지나는 옛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과 비슷해 보이지만 수동적인 자세로 구원을 기다리던 기존 여주인공들과 로지나는 확연하게 다른 태도를 보인다.

그녀는 피가로를 통해 전해받은 알마비바의 편지에 곧바로 답신을 내놓았으며, 후견인인 바르톨로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당초 알고 있던 계획이 틀어져 알마비바가 자신을 갖고 놀았다는 생각에 절망한 그녀는 바르톨로와의 결혼에 동의하지만 그녀의 분노는 예전의 여주인공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자신의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로지나는 낭만적인 동화 속 여주인공들과 달랐다. 이는 근대부터 자리를 잡고 커지기 시작한 여권 신장과 사회에서 여성들이 갖는 영향력의 확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전조이기도 했다.

주인공 외에도 이렇게 개성적이고 다양한 인물들이 서로 얽히며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는 근대의 한 단면을 효과적으로 담아내었다. 피가로, 알마비바 백작, 로지나라는 등장인물은 구시대와 작별하려는 자유주의의 상징이었으며 그 반대에 자리한 바르톨로, 바질리오는 구시대의 악습과 관념을 대변하였다.

연극, 그리고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는 당대로서는 파격적인 등장인물과 이야기, 그리고 배경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의 이상적인 모습과 그에 대한 갈망을 그려내었다.

오늘날까지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오늘날이 바로 18세기 당시 민중들과 예술가들이 꿈꾸던 '새로운 시대'의 연장이자 더욱 발전된 형태의 이상향인 까닭이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작품들 중 대다수는 지나간 세월과 마찬가지로 어딘가에 묻혀버렸다. 이는 작품에 '다음 시대'를 향하는 방향성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베토벤은 로시니에게 필담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당신이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작곡가군요. 이탈리아 오페라가 존재하는 이상 이 작품은 계속 공연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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