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마 콘텐츠로 풀어보는 오페라 이야기

▲ 오페라 '돈 파스콸레' 중 말라테스타의 아리아 'Bella siccome un' angelo'를 부르는 바리톤 정경 교수 (사진=오페라마예술경영연구소)

(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1842년, 도니제티는 매우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빈에서 오페라 작품인 '샤무니의 린다'를 초연에 올린 뒤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 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도니제티는 파리의 이탈리아 극장(Theatre Italien)에서 '샤무니의 린다'를 무대에 올리고 큰 성공을 거둔다. 공연이 끝난 뒤 한동안 파리에서 머무른 도니제티는 이탈리아 극장의 지배인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작품의 의뢰받게 된다.

당시 파리 이탈리아 극장은 당대 최고의 성악가 네 명과 계약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걸출한 배우들을 살릴 만한 작품이 부족했고, 극장의 지배인은 큰 고민에 빠져 있던 참이었다.

숙고 끝에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제작할 필요를 깨달은 지배인은 당시 파리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군림하고 있던 도니제티를 찾아간 것이었다. 파리의 정취와 예술에 열성적인 시민들의 모습에 흠뻑 취해 있던 도니제티는 흔쾌히 의뢰를 수락했고, 이 만남으로부터 '돈 파스콸레'가 탄생하게 된다.

'돈 파스콸레'의 각본은 당시 셰익스피어와 쌍벽을 이루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영국인 극작가 벤 존슨의 작품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원작의 이름은 '에피코이네, 또는 말없는 여인'이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시끄러운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부자 노총각으로 말수가 없기로 소문난 처녀와 결혼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기 결혼이었음이 드러난다. 말없던 여인은 사실 엄청난 수다쟁이였으며,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돌변한 것이었다. 이에 주인공인 남편은 당황하여 어떻게든 이혼 절차를 밟기 위해 허둥댄다.

당시 오페라 작곡가들은 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다. 1810년에는 이 희곡을 바탕으로 한 스테파노 파베시의 오페라 '마르크 안토니오 경'이 초연되었고, 후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동일한 희곡을 바탕으로 오페라 '말 없는 여인'을 작곡하기도 했다.

극작가인 루피니와 도니제티는 오페라 제작 과정에서 파베시의 오페라 작품인 '마르크 안토니오 경'의 대본을 참고했다. 도니제티는 작곡은 물론 대본 작업에까지 참여하며 열성을 보였다. 상당한 제작 기간, 그리고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오페라 '돈 파스콸레'는 1843년 1월 3일 역사적인 초연 무대를 갖는다. 반응은 그야말로 열광적이었다.

이 작품은 도니제티가 남긴 실질적인 최후의 인기작이기도 하다. '돈 파스콸레' 이후에도 세 편의 오페라 작품을 남겼으나 이들 작품은 후대까지 공연이 이어지지는 못했다. 따라서 오페라 '돈 파스콸레'는 도니제티가 남긴 다수의 인기 오페라 작품들 중에서도 최후의 역작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도니제티는 19세기 청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20세기 초반부터 혜성처럼 나타난 리하르트 바그너, 주세페 베르디, 자코모 푸치니 등에 잊히고 만다. 이러한 세대교체에는 벨칸토 오페라의 쇠퇴 흐름도 한몫을 했다.

새로운 악극, 사실주의적 경향이 눈에 띄는 바그너의 베리스모 오페라가 등장하면서 도니제티가 추구했던 벨칸토 오페라는 구식 오페라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벨칸토 오페라가 기교만을 과시한다는 편견이 생겨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심지어 1914년 무렵부터는 아예 공연 레퍼토리에서 벨칸토 오페라 장르가 사라질 정도여서, 소프라노가 관객들에게 기교를 선보이고자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무대에 오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벨칸토 오페라, 나아가 도니제티의 작품들은 그렇게 세상에서 잊혀가는 듯 보였다.

뜻밖의 재조명, 그리고 급부상은 1950년대가 되어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소프라노들이 모여 벨칸토 오페라의 아리아를 그저 기교의 향연이 아닌 극적인 감정이 담긴 음악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들의 노력, 그리고 호연에 관객들은 벨칸토 오페라를 다시 찾게 되었고, 벨칸토 오페라의 또 다른 거장들인 로시니, 벨리니의 작품과 더불어 도니제티의 오페라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다. 특히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사랑의 묘약', '돈 파스콸레'는 오늘날에도 그 명맥을 이어가며 세계 곳곳에서 무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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