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丁經, Claudio Jung)(www.claudiojung.com)

바리톤 성악가. 오페라와 드라마를 융합한 '오페라마(Operama)'를 창시했으며, 예술경영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사)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www.operama.org) 소장으로 한세대학교 예술경영학과에 재직 중이다. 저서 '오페라마 시각(始覺)'.

▲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정경 소장

우리 예술인들 사이에는 '광대는 보따리를 천천히 풀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한꺼번에 보여주면 관객들이 금방 질리고, 결국 수지맞는 장사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이다.

혜성처럼 나타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며 인기를 얻었지만 과도한 이미지 소비로 순식간에 그 인기를 잃고 거품처럼 사라지는 인물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만큼 대중을 상대로 자신의 재능을 선보이는 것은 기회인 동시에 위험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 예술가들은 관객이 만족할 만한 완벽한 무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예술가임과 동시에 상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공존시키고자 하는 나는 때때로 깊은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가끔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순간에도 고민을 계속한다.

대중의 광대로서 나의 심연에 흩뿌려진 숨은 부스러기까지 드러내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과연 계속되는 요청을 받아들여 앙코르곡을 불러야 하는가. 철저히 계약된 노래만 부르고 ‘정경’이라는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수요를 긴장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마치 예술가 정신과 상인 정신의 대리전처럼 느껴지는 나의 이 딜레마에서 예술가 정신이 항상 승리를 거둔다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삶이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나에게 다음 무대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무대에 살고 무대에 죽는 광대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무대가 내 인생 마지막 무대라면 나는 주저 없이 예술가의 길을 택하겠다.’

이처럼 내 안의 ‘예술가 정신’이 ‘상인 정신’을 물리치면 나는 관객을 위해 계약에 없는 노래를 한 곡이라도 더 부르고 무대를 내려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업가의 수기를 읽으면서 ‘상인 정신’에 대한 나의 편협했던 인식은 변화를 맞이했다. 그는 당시 사업계에서 내로라하던 인물들의 안정 지향적 분산투자 경영 방식에 동조할 수 없다며 오로지 한 분야에만 투자하는 역발상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인물이었다.

그는 이 세상에 여러 부류의 사업가가 존재하며 ‘으레 사업가라면 이렇게 할 것이다’ 따위의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아야한다고 주장했다. ‘다음 장이 서는 날’을 고려해 안정을 추구하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신념으로 주어진 순간에 몰두하여 장사를 하는 상인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와 나는 명백히 후자에 속하는 유형이었다.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예술가. 하나의 상품에 모든 자본을 투자하고 기꺼이 상운을 걸 수 있는 상인. 이들이 함께한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동업자이자 동반자가 아닐까.    

삶도 사랑도, 행복도, 고통도 그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듯, 나의 목소리 또한 그러하다. 성악가로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고 부정하고 싶은 앞날이지만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나의 음악은 소비재로서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다.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어제 오른 무대에서 나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오늘의 무대에서 나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의 무대에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는 기억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모든 무대에서도 아낌없이, 그리고 남김없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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