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마 콘텐츠로 풀어보는 오페라 이야기

▲ 바리톤 정경 교수 (사진=오페라마예술경영연구소)

(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인류 역사에서 '구원'이라는 주제는 영원한 논란거리이자 세계에 대한 해석에 있어 늘 뜨거운 화두였다. 녹록지 않은 삶의 의미와 그 당위성을 찾기 위해, 갑작스러운 불행의 이유를 찾기 위해, 무자비한 재난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인간 사회는 종교를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구원이라는 개념은 비단 기독교적인 교리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도 흔히 구원을 찾아 헤맨다.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정신을 돌릴 곳을 찾아 헤매고, 그로 인해 고통이 사그라진다면 이를 일종의 구원이라 여기곤 한다.

낭만주의에서 구원은 중요한 근본 개념 중 하나였다. 이는 이상적인 낭만 세계가 현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낭만주의에 유독 비극 작품이 많은 이유는 부조리한 현실에서 죽음을 맞이해 이상 속 유토피아로 향한다는 믿음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작곡가 바그너는 평생 자신의 작품을 통해 구원을 표현하고 그에 대해 고찰한 철학자이자 예술인이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들', '방랑하는 네덜란드인', '니벨룽의 반지', '파르지팔' 등 대다수의 오페라에서 그는 구원을 찾아 헤맸다. 그의 오페라 대표작 '탄호이저'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바그너는 두 가지 모순적인 성향을 겸비하고 이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인물이었다. 분노 조절 능력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의심되었을 정도로 쉽게 불같이 화를 내는 성정, 수많은 여성 편력, 후원자의 아내를 뺏는 일조차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사회윤리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방식, 지향하는 바에 집착하는 모습 속에서 작품 속 베누스로 상징되는 쾌락과 정념, 충동을 엿볼 수 있다.

반면 모국어인 독일어에 대한 고찰과 새로운 음악극의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한 연구, 이에 대한 필요성과 방향을 논리적으로 저술하는 태도 등은 현실세계가 요구하는 합리성과 맞닿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정념과 이성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지닌다. 내면의 평화와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서로 조화롭게 공존해야 하는데 만일 이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삶에는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충동적인 정서에 크게 얽매이는 사람은 주변과 끝없이 마찰을 일으키며, 이성만을 강조하는 사람은 주위를 지치게 만들고 만다. 그리고 흔치는 않지만 이 두 가지 속성이 모두 양 극단에 이르면, 바그너처럼 두 상반된 가치관이 서로 끝없이 충돌하면서 삶 자체가 고단하게 흘러가는 듯하다.

바그너의 작품 속에서 이 두 극단적 속성은 각각 베누스와 엘리자베트라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등장하며, 탄호이저는 이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탄호이저가 부르는 아리아, '가슴속의 회개(Inbrunst im Herzen)'에는 정념과 이성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점차 광기에 젖어가는 모습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바그너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허무주의적이고 염세적인 철학에 심취해 있었다. "인생은 고통이요, 이 세계는 최악의 세계이다"라고 말한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욕망이 무한한 데 비해 그 충족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철학에 따르면 욕망의 발현은 곧 어딘가가 결핍되어 있다는 의미이며, 이 결핍이 곧 고통이었다. 나아가 그는 쾌락이나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결핍, 즉 고통이 순간적으로 완화되었을 때 찾아오는 소극적인 안정제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바로 이 결핍으로 비롯된 고통이 바로 오페라 '탄호이저'의 주인공이 겪는 갈등의 본질이며, 결국 이 갈등의 해소책을 마련하기 위해 바그너와 탄호이저는 '구원'을 향하게 된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예술가들의 주요 창작 동기 중 하나였다. 오페라를 비롯해 문학, 미술, 연극 등 예술 전반에 걸쳐 죽음을 주제로 삼은 작품이 드물지 않았다. 당대 예술인들이 죽음이라는 개념을 중요시 여긴 이유는 바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 낭만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이상향, 즉 유토피아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관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연인 모두의 죽음을 통해 결실을 맺는 사랑 등이 대표적인 예다. 결과적으로 낭만주의 예술작품에서 죽음이라는 해소책은 현실적으로는 비극적 결말인 동시에 이상적으로는 해피엔딩에 도달한 것이기도 했다.

바그너에게 있어 구원이란 기존 종교적 질서에서의 구원만을 뜻하지 않았다. 바그너가 표현하고자 한 구원 개념은 보다 포괄적으로 심리적인 해방의 영역까지 아우른다. 자신이 청년과 중년기에 겪은 빈곤이나 지배층의 억압, 여론의 향배 등을 거치며 진정한 자유로움을 꿈꾸던 바그너는 자신의 작곡가 인생 전반에 걸쳐 단지 종교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은, 인생 전반에 대한 구원 개념을 정립하고자 큰 노력을 기울이며 숙고했다.

바그너를 두고 '게르만적 이상을 표현하는 가장 완전한 음악가'로 칭송하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훗날 바그너의 가장 극렬한 비판자로 입장을 선회하여 집필한 비판서가 바로 '바그너의 경우(Der Fall Wagner)'라는 저서이다. 그는 바그너의 구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원의 문제는 그 자체로 경외심을 갖게 하는 문제이다. 바그너는 그 어떠한 것보다도 구원에 대해 깊이 생각한 인물이다. 그의 오페라는 구원의 오페라이다. 어떤 사람은 항상 '그'에게서 구원을 받고자 한다. '그'는 남자일 수 있고 때로는 여자일 수도 있다. 이것은 '그의' 문제인 것이다."

니체는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등장하는 구원자(구세주)가 결국 인간 초월적 존재의 대변자라고 여겼다.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를 부정하고 현세의 삶을 중시하던 니체에게는 기적적인 구원을 갈망하는 태도와 작품이 탐탁지 않았다. 결국 니체는 바그너의 작품을 대중들의 신경을 사로잡는 교묘한 선전술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오페라 '탄호이저' 제3막에 등장하는 '엘리자베트의 기도(Allmächt'ge Jungfrau)'에는 니체가 비판하고, 바그너가 염원했던 구원의 내용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 교황조차 용서하지 않은 탄호이저를 위해 엘리자베트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면서 그의 죄를 사해 달라는 기도를 올리자 급기야 나무 지팡이에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기적, 혹은 구원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는 비단 오페라 '탄호이저'뿐만이 아닌 바그너의 다른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구원의 모티프이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들'에서 아름다운 소녀 에바는 기사인 발터 폰 슈톨칭으로부터 구원받고자 한다.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 등장하는 여성 젠타는 바다를 영원히 방황해야 하는 자를 구원해낸다. 또한 '니벨룽의 반지' 중 '신들의 황혼'에서 세상은 결국 사랑의 힘으로 구원받는다.

평생에 걸친 작곡 인생에서 늘 구원을 노래하고 기적적인 구원이 이루어지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데 몰두한 리하르트 바그너는 늘 내면에서 서로 다른 양극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인물이었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 구원을 노래하는 오페라는,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내면의 혼돈과 전쟁을 잠시나마 해소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구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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