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마 콘텐츠로 풀어보는 오페라 이야기

▲ 바리톤 정경 (사진=오페라마예술경영연구소)

(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꿈에 부풀어 있었으나 경제적으로는 전혀 여유가 없는, 보다 냉정하게 표현해 이상에 취해 현실적 삶을 등한시한 인물들을 그리는 작품이 바로 오페라 '라 보엠'이다. 이처럼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이 작품에 관객들이 열광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선 보헤미안들이 각광받던 시대적 배경을 들 수 있다. 19세기 중후반의 오페라는 마치 오늘날의 영화나 뮤지컬과 같은 가장 대중적인 예술이었다. 대중에 가까운 예술일수록 당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파헤치고 그 한가운데를 파고드는 법이다.

초창기의 오페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로부터 크게 변하지 않던 흐름은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근대사회가 도래하면서부터 변화를 맞이한다. 시대정신을 주제로 다루는 오페라, 신분제와 사회를 비판하는 오페라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나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등의 작품을 필두로 오페라는 당대의 사회가 가진 모순을 비판하고 결핍된 정신에 대한 갈망을 자유롭게 드러냈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세속화된 귀족과 부르주아를 풍자하고 그들에 대항하는 보통 인물들의 삶이 희극과 비극으로 조명되었다. 때로는 국가가 처한 정치적, 외교적 상황을 반영하여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강조하고 고취시키는 작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사실상 당대 서민들의 삶과는 크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웠다. 시대정신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담긴 작품이라 해도 등장인물들의 삶과 객석에 앉은 이들의 삶에는 크나큰 괴리가 늘 존재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배경이 제아무리 서민이라고 한들 항상 이상을 좇고 꿈을 꾸는 모습은 그저 이야기를 위해 잠시 빌려온 서민의 가면일 뿐이었던 것이다.

예술작품과 현실 사이의 이러한 간극에 대한 반성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베리스모 오페라’ 장르였다. 베리스모 오페라는 사실주의에 입각해 있었다. 콩트의 실증주의 철학을 비롯해 프랑스의 작가 에밀 졸라, 알렝상드르 뒤마 등이 전개한 자연주의 운동 정신을 받아들이고 이를 이탈리아 극예술에 녹여낸 것이다.

또한 당시 유럽을 휩쓸던 바그너식 오페라인 ‘악극’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신화적인 이야기에 매달리는 바그너와 달리 베리스모 오페라에서는 ‘우리는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오늘을 이야기하자’는 태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시기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략 1890년부터 1904년까지 이탈리아에서 발표된 오페라들을 베리스모 오페라로 규정하기도 한다.

베리스모 오페라로 분류되는 작품들은 이전의 휘황찬란하거나 위대한 인물들이 이끌어가던 오페라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가난, 치정, 살인, 배신, 음모 등 당시 서민들의 삶을 얼마나 실감나게 그려내느냐가 작품의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이들 작품은 대중화된 오페라를 감상하는 대중적인 관객들을 저격하기 위한 완벽한 작품이었다. 객석에서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접한 관객들은 무대를 향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푸치니의 '라 보엠'은 베리스모 오페라 중에서도 특별했다. 비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현실적인 사건을 냉정한 객관적 시점에서 서술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감상주의, 즉 센티멘털리즘에 입각하여 인물들의 삶과 심리를 묘사했기 때문이다. 찢어지는 가난마저 꿈을 꾸는 이들이 누리는 낭만의 요소로 그려내는 1막의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쩐지 동정심을, 심지어는 동경마저 불러일으킨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최소한의 땔감이 없어도, 당장 먹을 음식이 없어도 이들에게 다락방은 자신들만의 낙원이었다. 땔감 대신 꿈으로 가득한 자신의 작품을 불태워도 상관없었다. 그럼에도 방 안의 보헤미안들은 크게 좌절하거나 현실에 주저앉지 않았다. 한없이 맑은 정신과 눈빛으로 자신의 꿈만을 올려다보는 이 인물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별빛이었다. 점차 퍼져가는 자본주의와 근대 사회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의 고됨을 견디던 당시 관객들에게는 크나큰 울림이자 위로였던 것이다.

오페라 '라 보엠'이 사람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등장인물들의 이상이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자유분방하게, 순수하게 자신의 삶을 추구하던 인물들은 현실의 벽 앞에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보헤미안들의 자부심은 꿈과 이상을 지키며 살 수 있다는 패기에 있었다. 속물적인 것, 세속적인 모든 가치와는 거리를 둔 채 가난과 고달픔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놓지 못하는 마지막 1인치의 자아에 있었다.

그럼에도 이야기에서는 그 모든 삶의 자세와 이상에 대한 열의를 뒤흔드는 일이 발생하고 만다.  바로 미미의 죽음이다. 이는 결코 보헤미안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었다. 대신 자신의 꿈과 이상만으로도 어쩔 수 없는 무엇인가가 삶에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메시지였다. 시, 노래, 그림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이들에게 당장 수중에 돈이 부족해 사랑하는 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은 거대한 절망으로 드러난다.

역설적이지만 4막의 시작 장면은 1막의 장면과 오버랩된다. 로돌포와 마르첼로가 다락방으로 돌아와 각자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4막에 등장하는 둘은 엄밀히 말해 전과 다른 이들이었다. 붙잡을 수 없었던 지나간 사랑에 흉터를 간직한 이들. 미미를 그리워하는 로돌포와 무제타를 그리워하는 마르첼로는 어쩌면 더 이상 종이뭉치를 난로 속에 집어넣으면서 해맑게 웃을 수 있던 청년 예술가의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미미의 죽음으로 비로소 현실의 벽을 마주한 뒤 순수하던 청년에서 이른바 ‘어른’으로 나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오페라 '라 보엠'은 자유로운 보헤미안들의 좌절을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가슴 아픈 좌절은 관객들에게 먼 존재처럼만 느껴지던 당대 보헤미안들의 삶을 객석 한가운데로 끌어들인 작품이었던 것이다.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